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은 26일 법원의 과거사 문제와 관련, "(유신이 발동된) 1972년부터 (5공화국 막바지인) 1987년까지 판결 경향에 대한 내부조사를 해서 적당한 시기에 발표하겠다"며 진상규명 의지를 피력했다.

그는 "사회 지도층과 일반 서민의 양형간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해 보고 대책을 마련하겠다"면서도 법무부가 추진 중인 양형기준법 제정문제에 대해서는 "법보다는 법원 내부의 유연한 기준표를 운용하는 것이 옳다"며 부정적 견해를 보였다.

그는 대법원장 지명 이후 `국민을 섬기는 사법부'를 강조해온 것처럼 "법관  재교육은 법정의 재판진행에 관한 것으로 고치고 민원부서 친절도 향상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했으며 전관예우 문제에 대해선 "불구속 재판을 늘리면 자연스레  해결될 것"이라고 답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취임사에서 과거사 진상규명 의지를 밝혔는데 복안은.

▲ 최근 유신시절 판결을 몇 건 봤더니 암울했던 시절에 대해 정말 국민에게 사과해야겠다고 생각해 취임사에 넣었다. 과거사 문제는 세 가지로 요약가능하다.   우선 재심을 통한 방법이 있는데 재심사유는 법으로 정해져  있다.  재심사유의 폭을 넓히면 되지 않을까 싶지만 전적으로 재판에 관한 것이고 향후 대법원  판결에 의해 결정될 문제여서 제가 왈가왈부할 사항은 아니다. 앞으로 당사자가 재심을  청구하는 경우 재심을 통해 법원의 의견을 밝히는 것이 바람직하다.

둘째, 인적 청산문제는 조봉암 사건이나 인혁당 사건 등 당시 부당한 재판에 관여한 사람들이 법원을 다 떠나 시기적으로 맞지 않다.

셋째, 진상조사를 위한 외부 위원회 구성문제를 논의할 수  있겠으나  사법권은 사법조직의 독립도 필요하지만 법관 개갠의 재판상 독립도 중요하므로 위원회  구성은 적절치 않다.

개인적으로는 1972년부터 1987년 사이에 사법권 행사에 문제가 있었다는 지적이 있는 만큼 당시 판결 경향에 대한 내부적인 조사를 해서 과거사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려 한다.

-- 전관예우 등 의혹을 불식시키기 위한 양형기준제 도입에 대한 견해는.

▲ 판사가 전관이라는 이유로 재판 결론에 영향을 받는 경우는  극히  드물지만 형사 구속사건의 보석, 구속집행정지 등 재판절차 진행에 있어 전관예우가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러나 불구속 재판 원칙이 지켜진다면 이런 시비가 사라질 것이다.

양형기준법이 있는 나라는 세계적으로 한두군데밖에 안된다. 기준은 법으로  만드는 것보다 시대에 따라 변하는 유연한 기준표를 법원 내부에 만들어 운용하는  것이 옳지 않을까 싶다.

-- 현재 대법원 구성으로는 사회의 다양한 가치관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에 대한 견해와 앞으로 대법관 인선에 관한 기준을 말해달라.

▲ 재판과정에서 보수냐, 진보냐는 구분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판사가  제정된 법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따라서 판사의 덕목은 전문적 법률지식이 으뜸이고 다음이 합리적 판단능력, 인품이다.

미국에서는 대법관 선출과정에서 보수냐, 진보냐를 두고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되는데 우리나라는 이같은 문제제기도 적고 언론에서도 별다른 검증을 안하지  않느냐. 언론도 검증 작업에 동참해 달라.

-- 법원 내부의 인사시스템 보완도 필요한 것 아닌가.

▲ 현재 시행 중인 근무평정은 제가 대법원장 되기 전에 법관인사제도 개선위원장을 맡을 시절에 만든 것이다. 막상 시행했더니 판사들이 불만을  갖더라.  앞으로 근무평정을 절대적 기준으로 삼지 않는 새로운 평정방안을 찾아보려고 한다.

-- 대법관 퇴임 후 변호사 생활을 하면서 느낀 법원의 문제점은.

▲ 법원 밖에 있어보니 법원이 세상에서 가장 불친절하다고 하더라. 그래서  대법원장 인준을 받은 뒤 민원 관련 담당자를 만나 민원 부서와 검찰, 동사무소, 은행창구 등 다른 민원 부서를 직접 돌아다니라고 해놨다. 민원창구의 사무분담을  팀제로 하는 방안도 고려중이다.

또한 법정 분위기가 너무 딱딱하고 당사자의 어려움을 잘 이해하지 못하곤 한다. 법관에게 자기가 재판한 것을 직접 촬영해서 다른 법관과 비교해 보라고 한다. 법관 재교육은 법률교육이 아니라 법정의 재판 진행에 관한 내용으로 실시해야 한다.

-- 형사재판 항소심에서 법원이 힘있는 사람을 봐주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 항소심에서 사회 지도층에 대한 양형이 너무 약하다는 지적이 있어 사회  지도층 인사의 전체 형사 항소심에 대해 한번 알아볼 계획이다. 정치인이나  기업인의 양형이 일반 서민의 양형과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해서 대책을 마련해보려고 한다.

-- 11월까지 교체되는 4명의 대법관 임명제청은 어떤 방식으로 할 예정인가.

▲ 대법관 임명에는 대법원장의 제청과 대통령의 지명, 국회의 인준, 임명 절차를 거친다. 대법원장이 제청한다고 해서 대통령이 지명한다는 보장이 없는 만큼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 언론에서 많은 의견을 개진해달라.   대법관 4명을 한꺼번에 제청할지는 검토 중이어서 구체적으로 말씀드리기  어렵다.

-- 법원 행정처가 비대하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 사실 법원 행정처가 커진 것은 법원 직원이 늘어 법원 조직이 방대해졌기 때문으로 조직 자체를 간소화하는 것은 쉽지 않다. 법관에 관련된 행정업무가 많아 판사를 행정처에 배치하는 것은 필수적이다. 조직의 슬림화는 어려워도 무게의 슬림화는 가능하지 않을까 한다.

대법원도 전원합의체 활성화가 필요하다고 보고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사건을 전향적으로 전원합의체에서 할 수 있도록 하자고 말했다.

-- 법원 행정처장을 외부인사로 기용하는 방안에 대한 견해는.

▲ 대법관이 행정처장을 겸직하면 외부의 영향을 받을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행정처장은 사법행정을 잘 알아야 하기 때문에 외부인사를 기용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생각한다.